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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한국 단편 소설

화수분 (전영택) 전문 화수분 (전영택) 전문 첫겨울 추운 밤은 고요히 깊어간다. 뒤뜰 창 바깥에 지나가는 사람 소리도 끊어지고 이따금씩 찬바람 부는 소리가 휘익 우수수 하고 바깥의 춥고 쓸쓸한 것을 알리면서 사람을 위협하는 듯하다. "만주노 호야 호오야." 길게 그러고도 힘없이 외치는 소리로, 보지 않아도 추워서 수그리고 웅크리고 가는 듯한 사람이 몹시 처량하고 가엾어 보인다. 어린애들은 모두 잠들고 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눈에 졸음이 잔뜩 몰려서 입으로만 소리를 내어 글을 읽는다. 나는 누워서 손만 내놓아 신문을 들고 소설을 보고, 아내는 이불을 들쓰고 어린애 저고리를 짓고 있다. "누가 우나?" 일하던 아내가 말하였다. "아니야요, 그 절름발이가 지나가며 무슨 소리를 지껄이면서 그러나 보아요." 공부하던 애가 말한다. 우리.. 더보기
감자(김동인) 전문 감자(김동인) 전문 싸움, 간통, 살인, 도둑, 징역, 이 세상의 모든 비극과 활극의 근원지인 칠성문 밖 빈민굴로 오 기 전까지는 복녀의 부처는 (사농공상의 제 이위에 드는) 농민이었다. 복녀는 원래 가난은 하나마 정직한 농가에서 규칙 있게 자라난 처녀였었다. 예전 선비의 엄한 규율은 농민으로 떨어지자부터 없어졌다. 하나, 그러나 어딘지는 모르지만 딴 농민보다는 좀 똑똑하고 엄한 가율이 그의 집에 그냥 남아 있었다. 그 가운데서 자라난 복녀는 물론 다른 집 처녀들같이 여름에는 벌거벗고 개울에서 멱감고, 바짓바람으로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을 예사로 알기는 알았지 만,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막연하나마 도덕이라는 것에 대한 기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열 다섯 살 나는 해에 동네 홀아비에게 팔십원에 팔려서 시.. 더보기
배따라기(김동인) 전문 배따라기(김동인) 전문 좋은 일기이다. 좋은 일기라도,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 우리 '사람'으로서 는 감히 접근 못 할 위엄을 가지고, 높이서 우리 조고만 '사람' 을 비웃는 듯이 내려다 보는, 그런 교만한 하늘은 아니고, 가 장 우리 '사람'의 이해자인 듯이 낮게 몽글몽글 엉기는 분홍 빛 구름으로서 우리와 서로 손목을 잡자는 - 그런 하늘이다. 사랑의 하늘이다. 나는, 잠시도 멎지 않고 푸른 물을 황해로 부어내리는 대동 강을 향한, 모란봉 기슭 새파랗게 돋아나는 풀 위에 뒹굴고 있었다.​ ​ 이날은 삼월 삼질(음력 삼월 초사흗날.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따뜻한 날), 대동강에 첫 뱃놀이하는 날이다. 까맣게 내려다보이는 물 위에는, 결결이 반짝이는 물결을 푸른 놀잇배들이 타고 넘으며, 거기서는.. 더보기
허생전 (박지원) 줄거리, 해석 허생전 (박지원) 줄거리, 해석 줄거리 허생은 서른이 되는 동안 이십오 년을 글만 읽었으나, 과거 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는 부인 고 씨의 성화에 글공부를 중지하고 부자 변 진사에게 돈 만 냥을 빌린다. 그는 예전에 종으로 있다가 속량시켜 준 먹쇠를 만나 함께 여행한다. 허생은 안성장에서 과일을 모조리 사들였다 비싼 값에 되파는 방법으로 만 냥을 십만 냥으로 불린다. 그는 도적을 만나 그들의 사정이 딱한 것을 알고 신천지를 약속한다. 허생은 도적과 그들이 데려온 사람들 사천 명가량을 데리고 제주도 조천 땅으로 간다. 악행을 일삼던 탐관오리 제주목사 김아무와 이방 송삼복은 허생의 계략으로 쫓겨나고 제주도는 관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반상구별이 없고 모두 자기 맡은 바 일을 부지런히 하는 살기 좋은 별천지.. 더보기
허생전 (박지원) 전문 허생전 (박지원) 전문 허생전 박 지 원 허생은 묵적골에 살았다. 남산 밑 골짜기로 곧장 가면 우물이 있고, 그 위로 해묵은 은행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잇다. 허생의 집 사립문은 은행나무를 향해 있고 언제나 열려 있었다. 집이라야 두어 칸 되는 초가집으로 비바람에 거의 다 쓰러져가는 오막살이였다. 허생은 집에 비바람이 새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 글읽기만을 좋아했으므로 가난하기 짝이 없었다. 그 아내가 삯바느질을 해서 겨우 입에 풀칠을 했다. 어느 날, 허생의 아내는 배고픈 것을 참다못해 눈물을 흘리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당신은 한평생 과거도 보러 가지 않으면서 어쩌자고 글만 읽는단 말입니까?” 그러나 허생은 태연자약, 껄걸 웃었다. “내 아직 글이 서툴러서 그렇다네.” “그렇다면 공장(工匠) 노릇.. 더보기
바비도 (김성한) 전문 바비도 (김성한) 전문 바비도 김 성 한 바비도는 1410년 이단으로 지목되어 분형(焚形)을 받은 재봉직공이다. 당시의 왕은 헨리 4세. 태자는 헨리, 후일의 헨리 5세다. 일찍이 위대하던 것들은 이제 부패하였다. 사제는 토끼 사냥에 바쁘고 사교는 회개와 순례를 팔아 별장을 샀다. 살찐 수도사들은 외면하고 위클리프의 영역 복음서를 몰래 읽는 백성들은 성서의 진리를 성직자의 독점에서 뺏고 독단과 위선의 껍데기를 벗기니 교회의 종소리는 헛되이 울리고 김빠진 찬송가는 먼지 낀 공기의 진동에 불과하였다. 불신과 냉소의 집중공격으로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교회를 지킬 유일한 방패는 이단분형령(異端焚刑令)과 스미스피일드의 사형장뿐이었다. 영역 복음서 비밀독회에서 돌아온 재봉직공(裁縫職工) 바비도는 일하던 손을 멈추고 .. 더보기
꽃피는 시절 (이성복) 전문 , 특징 , 해석 꽃피는 시절 (이성복) 전문 , 특징 , 해석 꽃피는 시절 (전문) 멀리 있어도 나는 당신을 압니다 귀먹고 눈먼 당신은 추운 땅속을 헤매다 누군가의 입가에서 잔잔한 웃음이 되려 하셨지요 부르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생각지 않아도, 꿈꾸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당신이 올 때면 먼발치 마른 흙더미도 고개를 듭니다 당신은 지금 내 안에 있습니다 당신은 나를 알지 못하고 나를 벗고 싶어 몸부림하지만 내게서 당신이 떠나갈 때면 내 목은 갈라지고 실핏줄 터지고 내 눈, 내 귀, 거덜난 몸뚱이 갈가리 찢어지고 나는 울고 싶고, 웃고 싶고, 토하고 싶고 벌컥벌컥 물사발 들이켜고 싶고 길길이 날뛰며 절편보다 희고 고운 당신을 잎잎이, 뱉아낼 테지만 부서지고 무너지며 당신을 보낼 일 아득합니다 굳은 살가죽에 불 댕길 일 .. 더보기
동백꽃(김유정) 전문 동백꽃(김유정) 전문 동백꽃김 유 정 오늘도 또 우리 수탉이 막 쫓기었다. 내가 점심을 먹고 나무를 하러 갈 양으로 나올 때이었다. 산으로 올라서려니까 등 뒤에서 푸드득 푸드득 하고 닭의 횃소리가 야단이다.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 보니 아니나 다르랴 두 놈이 또 얼리었다.* 점순네 수탉(대강이가 크고 똑 오소리같이 실팍하게* 생긴 놈)이 덩저리 작은 우리 수탉을 함부로 해내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해내는 것이 아니라 푸드득하고 면두*를 쪼고 물러섰다가 좀 사이를 두고 푸드득하고 모가지를 쪼았다. 이렇게 멋을 부려 가며 여지없이 닦아* 놓는다. 그러면 이 못생긴 것은 쪼일 적마다 주둥이로 땅을 받으며 그 비명이 킥, 킥, 할뿐이다. 물론 미처 아물지도 않은 면두를 또 쪼이며 붉은 선혈은 뚝뚝 떨어진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