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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한국 단편 소설

허생전 (박지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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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전 (박지원) 전문

 

허생전

박 지 원

 

 

 허생은 묵적골에 살았다. 남산 밑 골짜기로 곧장 가면 우물이 있고, 그 위로 해묵은 은행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잇다. 허생의 집 사립문은 은행나무를 향해 있고 언제나 열려 있었다. 집이라야 두어 칸 되는 초가집으로 비바람에 거의 다 쓰러져가는 오막살이였다. 허생은 집에 비바람이 새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나 글읽기만을 좋아했으므로 가난하기 짝이 없었다. 그 아내가 삯바느질을 해서 겨우 입에 풀칠을 했다.

   어느 날, 허생의 아내는 배고픈 것을 참다못해 눈물을 흘리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당신은 한평생 과거도 보러 가지 않으면서 어쩌자고 글만 읽는단 말입니까?”

   그러나 허생은 태연자약, 껄걸 웃었다.

   “내 아직 글이 서툴러서 그렇다네.”

   “그렇다면 공장(工匠) 노릇도 못 한단 말입니까.?”

   “공장일을 평소에 배우지 못했으니 어쩌오?”

   “그렇다면 하다못해 장사라도 해야지요.”

   “장사를 하려 해도 밑천이 없으니 어쩌오?”

   아내는 드디어 역정을 냈다.

   “당신은 밤낮없이 글을 읽더니, 그래 ‘어쩌오’ 하는 것만 배웠수? 공장일도 못 한다, 장사도 못한다, 그럼 도둑질은 어떻수?”

   허생은 이 말에 책장을 덮고는 벌떡 일어섰다.

   “애석한 일이로다. 내 10년을 작정하고 독서를 하려 했더니 이제 겨우 7년이로구나.”

   그 길로 허생은 문밖으로 나섰다. 그러나 장안 거리에 아는 사람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는 종로 거리를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러면서 길가는 사람은 붙들고 물었다.

   “한양에서 제일 가는 부자가 누구요?”

   그 사람은 장안에서 제일가는 갑부라면 변씨라고 일러주었다. 허생은 그 집을 찾아갔다. 주인을 만나 길게 읍한 후에 단도직입적으로 잘라 말했다.

   “내 집이 가난하여 장사 밑천이 없소 그려. 무엇을 좀 해보고 싶으니 돈 만 냥만 빌려주시오.”

   “그렇게 합시다.”

   변씨는 대뜸 승낙하고는 만 냥을 내주었다. 허생은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가지고 가 버렸다. 변씨 집에는 그 자제들과 문객이 많이 모여 있었다. 문밖을 나서는 허생의 몰골을 보아하니, 이건 영락없는 거지가 아닌가. 선비랍시고 허리끈을 매기는 했지만 술이 다 빠졌고, 가죽신이라고는 하지만 뒤꿈치가 한쪽으로 다 닳아빠졌다. 다 낡아빠진 망건이며, 땟국이 줄줄 흐르는 두루마기, 거기다가 허연 콧물까지 훌쩍거리는 품이 거지 중에도 상거지였다. 이런 자에게 만 냥을 선뜻 내주다니.

   “어른께서 아시는 분입니까?”

   “모르는 사람일세.”

   놀라 묻는 말에 대답도 태연했다.

   “하루아침에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만금을 내버리시다니, 더구나 그 이름 석자도 묻지 않으시고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변씨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이건 그대들이 알 바가 아닐세. 무릇 돈을 빌리러 오는 사람이라면 자기의 생각을 이것저것 길게 늘어놓게 마련이야. 약속은 꼭 지킨다느니, 염려 마라느니 하고 말일세. 그러면서도 얼굴빛은 어딘가 구겨져 보이고 한말을 되뇌곤 하지. 그런데 이 사람은 옷이며 신발이 모두 떨어지긴 했지만, 우선 말이 짤막하고 사람을 대하는 눈이 아랫사람을 내려다보는 듯하며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네. 물질 따위에는 관심이 없고 벌써 전부터 제 살림에 만족하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어. 그러니 그가 한번 해보고 싶은 장사라는 것도 적은 일이 아닐 게고, 나 또한 그 사람을 한번 시험해보려는 거야. 게다가 주지 않았으면 모르되, 이미 만 냥을 내주었으니 구태여 그의 이름 석자를 물어서 무엇하겠나.”

   큰 장사꾼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만금을 손쉽게 얻은 허생은 집에도 가지 않고 ‘안성은 경기와 호남의 갈림길이고 삼남의 요충이렷다’하면서 그 길로 내려가 안성에 거처를 마련했다.

   다음날부터 그는 시장에 나가서 대추, 밤, 감, 배, 석류, 귤, 유자 따위 과일이란 과일을 모두 거두어 샀다. 파는 사람이 부르는 대로 값을 다 주고, 팔지 않는 사람에게는 시세의 배를 주고 샀다. 그리고 사는 대로 한정 없이 곳간에 저장해 두었다. 이렇게 되자 오래지 않아서 나라 안의 과일이란 과일은 모두 바닥이 났다. 대신들의 집에서 잔치나 제사를 지내려고 해도 과일을 구경하지 못해 제사상도 제대로 갖추지 못할 형편이었다. 과일 장수들은 이변에는 허생에게 달려와서 과일을 얻을 형편이 되었고, 저장했던 과일들은 10배 이상으로 호가하였다.

   “허어, 겨우 만냥으로 이 나라를 기울게 할 수 있다니 국가의 심천(深淺)을 알만하구나!”

허생은 이렇게 탄식했다. 과일을 다 처분한 다음 그는 칼, 호미, 무명, 명주, 솜 등을 모조리 사 가지고 제주도로 건너가서 그것을 팔아 이번에는 말총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모조리 사들였다.

   “몇 해가 못 가서 나라 안 사람들은 상투도 싸매지 못하게 될 게다.”

   과연 허생이 장담해 대로 얼마 가지 않아서 나라의 망건 값이 10배나 뛰어올랐다. 말총을 내다 파니 백만금이 되었다.

   어느 날 허생은 늙은 뱃사공 한 사람에게 물었다.

   “바다밖에 혹시 사람이 살만한 빈 섬이 있지 않던가?”

   “있습지요. 옛날에 바람을 만나 곧장 서쪽으로 사흘 밤낮을 가다가 한 섬에 닿았는데, 그곳은 아마도 사문과 장기 사이라고 짐작됩니다. 꽃과 잎이 저절로 피고 과실이며 오이가 철을 따라 여물었습죠. 그뿐입니까. 고라니와 사슴이 떼를 지어 다니고 바닷고기들도 놀라지 않더이다.”

   허생은 사공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사공이 만일 나를 그곳으로 인도해준다면 평생 동안 함께 부귀를 누리도록 해주겠네.”

   사공은 허생의 말을 좇았다. 이리하여 바람이 알맞게 부는 날을 기다려 동남쪽으로 곧장 배를 몰아 사공이 말한 섬에 이르렀다. 허생은 섬에 상륙하여 높은 바위 꼭대기로 올라가 사방을 바라보고 나서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 듯 이렇게 말했다.

   “땅이 1000리가 채 못 되니 무엇에 쓴단 말이냐. 다만 땅이 기름지고 샘물이 맛이 있으니 한갓 부잣집 늙은이 노릇이나 할 수 있겠다.”

   사공이 말했다.

   “섬이 텅텅 비고 사람 하나 구경할 수 없으니 누구와 더불어 산단 말입니까?”

   “덕이 있는 사람에게는 사람들이 저절로 찾아오게 마련이지. 덕이 없는 것이 걱정이지, 어찌 사람이 없는 것을 근심하겠는가.”

   이때 변산 지방에 수천 명의 도둑이 나타나 노략질을 하고 있었다. 여러 고을에서는 나졸들까지 풀어서 도둑을 잡으려 하였으나 도둑의 무리를 쉽사리 소탕하지 못했다. 그러나 도둑의 무리 역시 각 고을에서 대대적으로 막고 나서니 쉽게 나아가 도둑질하기가 어려워져 마침내 깊은 곳에 몸을 숨기고, 급기야는 굶어 죽을 판국에 이르렀다. 허생은 이 소문을 듣고 도둑의 소굴을 찾아 들어갔다. 그리고 도둑의 괴수를 만나 설득하기 시작했다.

   “너희들 1000명이 천금을 노략질해서 나누어 가진다면 한 사람 앞에 얼마씩 돌아가느냐?”

   “그야 한 사람에 한 냥이지.”

   “그럼 너희들에게 처는 있는가?“

   “없소.”

   “그럼 논밭은?”

   “흥, 밭이 있고 처가 있으면 왜 도둑질을 해?”

   “정말 그렇다면 왜 장가를 들어 집을 짓고 소를 사서 농사를 짓지 않나? 그렇게 하면 도둑이란 더러운 이름도 듣지 않을 테고, 살림살이하는 부부의 재미도 있을 것이고, 아무리 밖으로 나가서 쏘다닌다고 해도 아무도 잡아가지 않을 테니 얼마나 좋은가? 길이길이 의식이 풍족할 것이다.”

   “허허, 누가 그걸 몰라서 그래? 돈이 없으니까 그렇지.”

   허생은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이 도둑질을 하면서 어찌 돈이 없는 것을 근심한단 말이냐? 정 그렇다면 내가 마련해주지. 내일 바다에 나가면 붉은 기를 단 배들이 보일 게다. 그것은 다 돈을 가득 실은 배야. 갖고 싶은 대로 가져가거라.”

   이렇게 말하고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도둑들은 하도 말 같지 않아서 모두 미친놈이라고 웃어댔다. 그러나 다음날 혹시나 해서 바다로 나가 보니, 허생은 이미 30만냥이나 되는 돈을 배에 싣고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도둑들은 크게 놀라, 이건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모두 줄을 지어 절했다.

   “그저 장군님의 분부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어디 너희들이 질 수 있는 대로 가지고 가 보아라!”

   허생의 말이 떨어지자 도둑들은 앞을 다투어 돈자루에 달려들었다. 그러나 욕심뿐이지 제아무리 기운깨나 쓰는 놈일지라도 100냥을 짊어지지 못했다.

   “100냥도 들지 못하는 주제에 너희들이 무슨 도둑질을 한단 말이냐? 그렇다고 이제 평민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너희들의 이름이 도둑의 명부에 올라 있으니 그것도 안 되고, 그렇다면 갈 곳도 없겠구나. 그럼 잘 되었다. 내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이제부터 너희들은 한 사람이 100냥씩 가지고 가서 계집 하나와 소 한 마리를 구해 오너라. 너희들의 실력을 한번 보겠다.”

   도둑들은 대답하고는 저마다 돈자루를 걸머지고 뿔뿔이 흩어졌다. 허생은 2000명의 식구나 1년 동안 먹을 양식을 장만해 가지고 도둑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도둑들은 기일이 되자 모두 모여들었다. 허생은 그들과 부인들은 모두 배에 실었다. 허생이 도둑들을 도거리로 몰아갔으므로 이때부터 나라 안도 잠잠해졌다. 섬에 상륙하자, 곧 나무를 찍어 집을 짓고 대나무를 잘라 울타리를 세우니 순식간에 큰 마을이 생겼다. 그런 다음 다시 밭을 일궜다. 토질이 기름져서 밭갈이, 김매기를 하지 않아도 곡식 이삭이 무겁게 여물었다.

   이렇게 되자 식량이 남아돌아 3년 동안 먹을 양식을 저장하고 난 나머지는 모두 배에 싣고 장기로 가서 팔았다. 장기는 일본의 영토로 호수가 31만이었다. 때마침 큰 흉년이 들었으므로 가지고 갔던 양곡을 모두 처분하고 은 100만냥을 받아 가지고 돌아왔다.

   “이제야 뭘 좀 해본 것 같구나.”

   허생은 탄식하고 나서 섬에 사는 남녀 2000명을 모두 한자리에 모이게 했다.

   “내 처음 너희들과 이 섬으로 올 때에는 먼저 부자가 되게 한 다음에, 따로 문자도 만들고 옷이며 갓 같은 것도 지어 입게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땅은 좁고 내 덕도 부족하니 이제 나는 이곳을 떠날까 한다. 너희들은 아이를 낳거든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잡도록 가르치고, 또 하루라도 먼저 난 사람이면 서로 음식을 양보하는 따위의 덕을 길러야 한다.”

   그러고는 다른 배들을 모조리 불을 질러 없애버렸다.

   “가지 않으면 오는 사람도 없을 게다.”

   또 은 50만냥도 물속에 던져버렸다.

   “바다가 마르면 얻는 자가 있을 게다. 100만냥이라면 나라 안에서도 써먹을 데가 없다. 황차 이 조그마한 섬에서 어디다 쓰겠느냐.”

   마지막으로 도둑 중에서 글을 아는 자는 모두 불러내어 배에 실었다.

   “이 섬에서 화근을 뽑아버려야 한다.”

   이로부터 허생은 온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가난하고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을 구제했다. 그러고도 10만냥이나 남았다.

   “이것은 변씨에게 빌린 것을 갚아야겠군.”

   허생은 실로 오랜만에 변씨를 찾아갔다.

   “그대는 나를 기억하겠소?”

   변씨는 놀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대는 얼굴빛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군. 만금을 몽땅 털린 모양이구려.”

   허생은 웃으며 말했다.

   “재물로 인해서 얼굴이 좋아지는 것은 그대들에게나 있는 일이요. 만금이 어찌 도(道)를  살지게 한단 말이오.”

   그러고는 10만냥의 어음을 변씨에게 주었다.

   “내 하루아침의 주림을 견디지 못하여 공부를 끝내지 못했소. 그대의 만금을 부끄러워할 따름이오.”

   변씨는 크게 놀라 일어나서 절했다. 그리고 10만냥을 사양하고 옛날 빌려준 돈에다 이자만을 계산해서 받으려 했다. 그러자 허생은 화를 벌컥 내며,

   “그대가 어찌 나를 장사꾼 취급을 한단 말이오.”

하고는 소매를 홱 뿌리치고 일어나 가버렸다. 변씨는 더 말해야 소용이 없을 줄 알고 가만히 그 뒤를 밟아보았다. 그는 곧장 남산 밑 골짜기로 걸어가더니, 거기 다 쓰러져가는 어느 오막살이로 들어가 버렸다. 마침 한 늙은 할멈이 우물 위쪽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저 오막살이가 누구 집이요?”

   “허생원 댁이라우. 늘 가난하면서도 글읽기를 좋아하더니, 하루아침에 싸리문을 나선 후로 소식이 끊긴 지 5년이오. 그 처가 혼자 살면서 남편이 나간 날로 제사를 지낸다우.”

   변씨는 비로소 손님의 성이 허가라는 것을 알고 한숨을 내쉬고 돌아섰다. 다음날 변씨는 허생에게서 받았던 은을 모두 거두어 가지고 오막살이를 찾았다. 그러나 허생은 여전히 사양했다.

   “내 부자가 되고 싶었다면 100만냥을 버리고 10만냥을 취하겠소? 내 이제부터는 그대의 덕을 보고 살 것이니, 그대는 수시로 나를 돌보아주오. 식구를 계산해서 양식을 보내고 몸을 재어서 무명을 준다면 한평생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오. 무슨 까닭으로 재물을 가지고 나를 고단하게 만든단 말이오.”

   변씨는 여러 가지 말로 허생을 달래보았지만 허생은 끝내 들어주지 않았다. 이로부터 변씨는 허생의 쌀뒤주가 바닥나는 것을 계산하고 옷장 속을 헤아리고 때를 맞추어 손수 날라다주었다. 그러면 허생도 흔연히 반가워하였지만 혹시 분수에 넘치면 곧 좋아하지 않았다.

   “어째서 내게 재앙을 물려주려 한단 말인가?”

   그러나 술을 가지고 찾아가면, 평소보다 더욱 반가워하면서 서로 권커니 잣거니 취하도록 마셨다. 두어 해가 지나니 두 사람의 정은 날로 두터워져서 백년지기처럼 다정해졌다. 언젠가 변씨는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다섯 해 사이에 어떻게 해서 백만금을 벌었는가?”

   “그건 쉽게 알 수 있는 일일세. 우리 조선은 외국과 무역이 없고, 수레가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닐 수 없는 까닭에, 모든 물건이 그 안에서 생산되고 그 안에서 소비되지 않는가. 천금이란 적은 금액으로 모든 물건을 다 살수는 없지만 그것을 열로 쪼개면 열 가지 물건을 고루 살 수 있는 것이 우리 조선 땅이야. 그리고 물건이 가벼우면 나르기도 쉬워서 한 가지가 시세가 시원치 않더라도 나머지 아홉 가지는 시세가 좋아질 것이니, 이건 보통 작은 장사치들이 하는 이문내기의 방법이지. 게다가 만금이면 대개 한 가지 물건을 도거리로 모조리 살 수 있으니, 수레에 실렸거나 배에 실렸거나 모조리 매점할 수 있지 않은가? 한 고을에 가득한 것이라도 마찬가질세. 그물의 코처럼 한 번 훑으면 모조리 거두어들일 수 있는 거야.

   이를테면, 물의 산물 중에서 한 가지를 가려 슬그머니 독점해버린다든가, 해산물 중에서 그 어느 하나를 택해서 모조리 거두어들인다거나, 약재료 중에서 한 가지만을 독점해버린다면 모든 장사꾼은 그 물건을 구경할 수도 없게 되는 것일세. 값이 뛸 것은 당연하지. 그러나 이것은 백성들을 못살게 하는 방법이야. 백성을 도둑놈으로 만들기 좋은 방법이지. 훗날에라도 나라 일을 맡은 관리가 나의 이러한 방법을 쓰게 된다면 나라는 곧 병들고 말 거야.”

   변씨는 듣고 나서 다시 물었다.

   “그럼 처음에 내가 만금을 내어줄 것을 어떻게 알고 나를 찾아왔던가?”

   허생은 말했다.

   “자네가 꼭 내게 줄 것이라고 믿은 것은 아니지만, 누구라도 만금을 가지고 있는 장사꾼이라면 내주지 않을 수 없을 거야. 나 스스로 재주를 헤아려보면 넉넉한 만금을 벌 수가 있을 것 같지만, 운명은 저 하늘에 달려 있는 만큼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하거든. 그러므로 나를 알아보고 써먹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일세. 반드시 부자가 된 위에 더 부자가 되라고 하늘이 명한 거야. 그러니 돈을 내주지 않을 까닭이 있나. 이미 만금을 얻었으니, 그로부터는 그 복을 빌려서 행한 것뿐일세. 그리고 행하면 성공하였지. 만일 내가 내 재산으로 혼자서 일을 시작했다면 그 성패 또한 알 수 없는 일이야.”

   변씨는 허생의 그 재주가 아깝다고 생각했다. 자기와 같은 장사치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배포요. 기국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큰그릇을 어찌 썩힐 수 있단 말인가?

   “바야흐로 지금 사대부들은 전날 남한산성에서 받은 호란 치욕을 씻으려 하고 있네. 지략과 재주를 갖춘 선비로서 팔뚝을 걷어붙이고 한번 일어나서 슬기를 펼쳐볼 만한 때가 아닌가. 자네와 같은 재주를 가지고 어째서 묻혀 살며 그대로 썩힐 수가 있단 말인가.”

   “허허, 예로부터 한평생 묻혀 산 삶이 어찌 한둘에 그치겠는가? 저 조성기로 말할 것 같으면 적국에 사신으로 가더라도 솜씨 있게 일을 처리할 사람이었지만 한평생 베잠방이로 세상을 마치지 않았던가? 유형원은 족히 어려운 전장에서 수만 명의 군졸의 군량을 수송할 만한 재주를 가졌으면서도 들쭉날쭉한 바닷가에서 쓸데없이 소요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오늘날 국정을 맡아 처리하는 자들의 기량을 알 수 있지. 나로 말하면 장사에 솜씨가 있어. 그 돈으로라면 넉넉히 아홉 나라 임금의 머리라도 살 수 있었지만, 그것을 바닷속에 던지고 온 것은 이 나라에서는 쓸곳이 없기 때문이었네.”

   변씨는 후하고 긴 한숨을 쉬고는 돌아갔다. 변씨는 전부터 정승 이완과는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이공이 마침 어영대장이 되어 그와 더불어 이야기하다가 인재를 추천할 것을 권하였다.

   “요즘 항간에 기이한 재주를 숨기고 있는 사람으로 함께 큰 일을 해낼 만한 사람이 있으면 말해보게나.”

   변씨는 그제야 생각이 나서 허생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이공은 그런 인물이 장안에 살고 있다는 소리에 크게 놀랐다.

   “기이한 일이로군 정말 그런 사람이 있을까. 그래 그 사람의 이름은 무어라고 하던가?”

“소인이 3년을 그와 가까이 지냈지만 아직 그 이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이인임에 틀림없네. 자네와 한번 같이 가세.”

   이윽고 밤이 되자 이공은 수행하는 나졸을 다 물리치고 홑몸으로 변씨와 같이 허생의 집을 찾아갔다. 말을 타고 가기가 송구스러워 걸어서 갔다. 변씨는 이공을 잠시 싸리문밖에 세워두고는 혼자 안으로 들어가 허생을 만나보고 이공이 온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다. 허생은 듣는 둥 마는 둥하면서 말했다.

   “그대가 차고 온 술병이나 어서 풀게.”

   그래서 두 사람은 술을 내어 즐겁게 마셨다. 변씨는 술을 마시면서도 문밖에 세워 둔 이공이 민망스러워 거듭 이공의 일을 이야기하였지만 허생은 좀처럼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밤이 이슥해졌다. 그제야 허생은 말했다.

   “손님을 불러볼까.”

   이공이 들어왔다. 그러나 허생은 일어나 맞이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공은 몸둘 바를 몰라 하다가 마침내 나라에서 어진 이를 구하고 있다는 자기의 뜻을 말했다. 허생은 손을 휘저었다.

   “밤은 짧고 말은 기니 듣기에 지루하군. 지금 자네 벼슬자리는 무엇인가?”

   “어영대장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나라에서는 믿을 만한 신하겠군. 내 와룡선생을 천거할 테니 자네가 임금에게 청하여 삼고초려를 하게 할 수 있겠는가?”

   이공은 머리를 떨구고 한참 동안 생각하고 나서 말했다.

   “어려운가 합니다. 그 다음의 일을 듣고자 하옵니다.”

   “나는 둘째 번이라는 것은 배우지 못했네.”

   눌러 붙어서 재삼 묻자. 허생은 다시 입을 열었다.

   “조선이 옛날 그들에게 입은 은혜가 있다고 해서, 많은 명나라 장졸들의 자손들이 도망하여 동쪽으로 온 후로 떠돌이에 외로운 홀아비 생활을 하고 있네. 자네가 조정에 청하여 종실의 딸들을 그들에게 시집보내고, 김류와 장유의 집 재산을 털어서 그들의 살림을 장만해줄 수 있겠는가?”

   이것도 정말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닌가. 이완은 한참이나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어렵겠습니다.”

   “이것도 어렵다. 저것도 어렵다. 그럼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럼 아주 쉬운 일이 있으니 자네가 할 수 있겠는가?”

   “원컨대 듣고자 합니다.”

   허생은 말했다.

   “대체로 대의를 천하에 외치고자 한다면 먼저 천하의 호걸들과 교분을 맺지 않으면 안 되네. 또 남의 나라를 치고자 한다면 먼저 첩자를 쓰지 않고는 여태껏 성공한 예가 없었네. 지금 만주 땅에는 천하의 주인이 들어앉아서 스스로 중국 사람과는 친하지 못했다고 여기는 터일세. 이에 조선이 솔선해서 다른 나라보다 먼저 항복을 하였으니, 저들은 우리를 가장 미더워할 것일세. 이제 우리가 우리 자제들을 파견하여 학문도 배우게 하고 벼슬도 하게 하는 등 옛날 당원의 고사를 따르고 상인들도 자유로이 내왕하도록 해달라고 한다면, 그들은 우리의 청을 기뻐하며 허락할 것일세. 그렇게 되거든 나라 안에서 자제들을 뽑아서 머리를 깎고 되놈의 옷을 입혀 들여보내고, 지식층은 빈공과를 보도록 하게. 그리고 백성들은 장사꾼으로 멀리 강남에까지 들어가 그들의 모든 허실을 염탐하고 그 고장 호걸들과 친분을 맺어둔다면, 그때야말로 군사를 일으키고 천하대사를 꾀하여 옛날의 수치도 씻을 수가 있을 것이네. 그런 다음 명나라의 황족인 주씨를 찾아 천자로 받들고, 만약 주씨가 없으면 천하의 제후들을 거느리고 천자가 될 만한 인물을 하늘에 추천한다면, 우리 나라를 잘되면 대국의 스승이 될 것이요, 못 되더라도 백구의 나라는 될 것일세.”

   이완은 얼빠진 듯 멍하니 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사대부들이 몸을 삼가고 예법을 지키고 있으니, 누가 그들의 자제를 머리 깎게 하고 호복을 입게 하겠습니까?”

   이 말에 허생은 버럭 화를 냈다.

   “소위 사대부란 대체 어떤 놈들이냐? 이맥의 땅에 태어나서 제멋대로 사대부라 하니 얌통머리가 없지 않느냐? 바지저고리를 온통 희게만 해 입으니 이건 장사를 지내는 사람의 옷차림이요, 머리를 한데 묶어서 송곳처럼 상투를 트니 이건 남만의 방망이 상투가 아니냐. 그러면서 어찌 예법을 압네 주둥이를 놀리는 거냐? 옛날 번어기는 사사로운 원한을 갚고자 머리를 자르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고, 무령왕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자 호복을 입는 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았다. 지금 명나라의 원수를 갚겠다고 하면서 그래 그까짓 상투 하나를 아낀단 말이냐? 뿐만 아니다. 장차 말타기ㆍ칼치기ㆍ창찌르기ㆍ활당기기ㆍ돌팔매질을 익혀야 하거늘, 그 넓은 소매를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예법만 찾아? 내 비로소 세 가지를 말했으나 너는 그 중 한 가지도 못 한다 하면서 그래도 신임 받는 신하 노릇을 한단 말이냐? 그래도 굳이 신임 받는 신하라고 하겠느냐? 이런 놈은 참수하는 것이 옳다.”

   허생은 좌우를 돌아보며 칼을 찾아 찔러 죽일 듯한 기세다. 이공은 크게 놀라 엉겁결에 뒤창을 차고 나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그는 다시 허생의 집을 찾았으나, 이미 집은 텅 비고 찬바람만 쓸쓸할 뿐, 주인의 종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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