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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한국 단편 소설

아우를 위하여(황석영)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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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네게 유익하고 힘이 될 말을 써 보내고 싶다.

네가 입대해 떠나간 이제 와서 우울한 고향 실정이나 우리의 지난 잘잘못을 들어 여기에 열거해 놓자는 건 아니야.

아무 얘기도 못해 주고 묵묵히 너를 전송했던 형의 답답한 마음을 이해하여 주기 바란다. 나는 우리가 지금쯤은 의심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어떤 문제를 확실히 해두고, 또한 장래를 굳게 믿기 위하여 내 연애 이야기를 빌리기로 한다. 너는 십구 년 전에 내가 누구를 사랑한 적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아마 놀랄 거다. 따져봐. 내 열한 살 때가 아니냐. 에이, 이건 오히려 형의 달착지근한 구라를 읽게 됐군, 하며 던져 버리지 말구 읽어주렴. 너 영등포의 먼지 나는 공장 뒷길들이 생각나니. 생각날 거야, 너두 그 학교를 다녔으니까. 아침마다 군복이나 물빠진 푸른 작업복 상의를 걸친 아저씨들이 한쪽 손에 반찬 국물의 얼룩이 밴 도시락 보자기를 들고 공장 담 아래를 줄이어 밀려가곤 했지. 우리 아버지두 그 틈에 있었을 거야. 참 그땔 생각하면 제일 먼저 까마중 열매가 떠오른다. 폭격에 부서져 철길 옆에 넘어진 기차 회통의 은밀한 구석에 잡초가 물풀처럼 총총히 얽혀서 자라구 있었잖아. 그 틈에서 우리는 곧잘 까마중을 찾아내곤 했었다. 먼지를 닥지닥지 쓰고 열린 까마중 열매가 제법 달콤한 맛으로 유혹해서는 한 시간씩이나 지각하게 만들었다.

먼지 나는 길, 공자의 담, 까마중 열매 다음에 생각나는 긴 땅에 반쯤 묻혀있던 노깡들이야. 사택 앞의 쓸쓸한 가로를 따라서 가죽나무가 서 있고, 나뭇가지에는 하늘소벌레가 살았고, 벽돌벽의 어지러운 선전문 자국들, 창고의 탄환 흔적, 그리고 인가 끝에 상두도가가 있었고, 실개천을 가로지르며 노깡들이 엇갈려 길게 누워 있었지. 노깡 속엔 우리가 그 무렵에 눈이 시뻘개서 찾아다니던 총알이 많이 나오곤 했었다. 총알을 찾으러 캄캄한 노깡 속에 들어갔다가 내가 기절했던 걸 어머니에게서 아마 들었을 거야. 애들이 그 속에서 사람이 많이 죽었다며 전혀 접근을 꺼려하길래 어느 날 나 혼자 들어갔지. 안은 아주 비좁구 캄캄했는데 물이 질퍽하게 괴어 있더구나. 손으로 더듬으며 중간까지 가보니까 예상대로 기관포 탄환이 많이 있더랬어. 나는 아이들의 찬탄과 선망을 독차지할 일을 생각하고 온통 가슴이 떨렸어. 탄창 사슬에 끼인 게 한 줄이나 되더라. 나는 정신없이 파구 또 팠지. 한참 동안을 파는데 꺼림찍한 기분이 들구 뭔가 손가락에 걸려 나오는 거야. 나뭇조각인 줄 알았어. 돌보다는 가볍구 나무보단 좀 듬직하단 말이야. 그래 눈앞에 바짝 갖다 대구 들여다보니깐 뼈다귀야. 둥그런 관절두 달려 있는 진짜 뼈다귀 말이지. 이크······ 나는 그게 날 잡구 늘어지는 기분이더라. 양쪽 입구를 보니까 꼭 관솔 빠진 구멍만큼 보이는 거야. 소릴 지르다가 뻐드러졌어. 근처 실개천서 빨래하던 아줌마가 나를 끌어내줬단다. 어머니가 야단쳤어. “너 그런 데 들어가면 귀신이 잡아 먹는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어린애들이 그런 일루 호되게 놀라게 되면 잠잘 때 악몽을 꾸어서 식은땀을 흘리며 경기를 일으키는 거야. 내가 몸이 불편할 때 꿈을 꾸면 말이야, 언제나 그 노깡 속에 들어가 있는 거야. 어느 때는 그게 우리 영단 집의 시멘트 굴뚝 속이 되고, 피뢰침 달린 유리공장의 벽돌도가니 안이 되고, 시궁쥐가 많이 사는 공중목욕탕의 하수도 속이 되는 거야. 끝은 언제나 비슷하지. 양쪽 입구가 무너져, 해골바가지나 뼈다귀 손이 쑥 솟아올라서 내 머리털이나 발목을 말야 꽉 잡구 안 놓는 거야. 상두도가집 아이가 그 자리에 찾아가서 침을 세 번 뱉고 왼발로 세 번 구르면 된다기에 그대루 했는데두 여엉 무서운 기분이 가시질 않았어.

내가 일단 자기의 공포에 굴복하고 승복하게 되자, 노깡 속에서의 기억은 상상을 악화시켜서 나를 형편없는 겁쟁이루 만들고 말았다. 그런데 어떤 아름다운 분이 나타나 나를 훨씬 성숙한 아이로 키워줬지. 눈빛처럼 흰 여학생 칼라 뒤로 얌전히 빗어 묶은 머리를 길게 땋아 늘였고, 목소리가 노래하는 듯 고운 분이었어.

우리를 위압하고 공포로써 속박하는 어떤 대상이든지 면밀하게 관찰하고 그것의 본질을 알아챈 뒤, 훨씬 수준 높은 도전 방법을 취하면 반드시 이긴다.

그이를 사랑하게 되면서 나는 분명히 무언가를 배웠는데, 그 무렵엔 꼭 집어내서 지각할 수는 없었지. 이제 와 생각하니 그이는 진보(進步)의 의미와 사랑의 가치를 내게 가르쳐 주었던 거야.

나는 피난지 부산의 학교에서, 수복되고도 수 년이 지난 서울로 전학을 해왔던 첫날, 기분이 잡쳐버리고 말았다.

우리 학교에 미군부대가 들어와 있어서 학년별로 여러 곳에 뿔뿔이 흩어져 빈 창고나 들판에서 공부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흙바닥에 가마니를 깔았고 책상대신 화판을 받쳐 글씨를 썼다. 어둠침침한 창고 교실에서 백 명이 넘는 아이들이 우글거렸으니 언제나 먼지가 뿌옇게 일어나는 게 보였다. 교실이 엉망인 것뿐만 아니라 우리 학교 애들은 질이 나빴는데 전쟁통에 몇 년씩 학년을 묵은 큰 애들이 열 명쯤 되었다. 백여 명의 아이들을 키 순서대로 세워 놓으면 나 같은 건 겨우 앞줄에서 몇 번째가 될 만큼 작았다. 애들은 내게 아무런 관심도 돌리지 않았으나, 첫 번 일제고사에서 수석을 차지하고 나자 친구가 더러 생기게 됐던 거였다.

나는 담임선생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메뚜기라는 별명을 가졌는데, 머리 가운데가 쭉 벗어지고 양쪽 관자놀이 부근에만 곱슬털이 부성부성한 모습이었다. 그는 국민학교 선생님 노릇에 별로 흥미가 없는 것 같았다. 무슨 가게인지를 부업으로 벌여놓고 있었는지라 그는 툭하면 자습시간을 주고선 하루 온종일 밖으로 나돌아 다녔다. 각 학년의 교실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고, 교장 선생님도 일학년부터 육학년까지 모든 학급을 한 바퀴 돌아보려면 큰맘을 먹어야 했으니 메뚜기 씨께선 만판이었다. 메뚜기가 요행이 교실에 붙어 있게 되는 날도 오후에는 모두 야외로 끌고 나가서 몇 시간씩이나 풍경 사생을 그리게 해놓고는 공부 끝이라는 거였다. 내가 전학 가기 전인 일학기까지도 석환이가 반장 노릇을 했으나, 나처럼 몸집이 작고 약골이었던 그애는 큰 아이들이 득실대는 교실의 기강을 잡을 도리가 없었다. 첫째 가다 장판석, 둘째 가다 임종하, 셋째 가다 박은수, 그 이하는 그애들에게 붙어서 알랑대던 떨거지 몇 명이 있었다. 모두 중학 이삼학년씩은 되었을 나이배기들이었다. 내가 입학할 무렵에 세력의 판도가 바뀌게 되었는데 이영래라는 새로운 가다가 신입해 왔던 것이다. 영래는 미군 부대 하우스 보이로 싸젠이 기른다는 아이였다. 술이 주렁주렁 달린 인디언식 가죽 저고리에 청바지를 입고 시계까지 차고 다녔다. 눈이 가늘게 찢어지고 어깨가 바라진 영래는 벌써 다리에 털이 돋은 열다섯 살바기였다. 미군 지프가 신입생과 선물을 싣고 제분 회사 창고 앞마당을 돌며 클랙슨을 뿡빵 울리니까 애들이 모두 환호성이었다. 배불뚝이의 맘 좋게 생긴 싸젠이 초콜릿과 도넛을 애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주었다. 그날로 영래를 찬양하며 그애의 가방을 들어다 주는 아이가 생겼고, 얼마 안 가서 둘째 셋째 가다인 은수와 종하까지 그애 편으로 붙었다. 영래가 드디어 첫째 가다 장판석이를 빈 발전실로 유인해다가 몽둥이로 습격해서 항복을 받았다. 판석이는 아래 권위로 밀려나고 영래가 하루아침에 첫째가 되었는데도 아이들은 그런 일에 별로 아랑곳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큰 애들은 뒷전에서 저희끼리 킬킬대며 우리가 모르는 얘기만 지껄이며 따로 놀았으니까.

어느 토요일 아침, 메뚜기가 셔츠 바람으로 들어와 바께쓰에 물을 떠다 교실에서 세수를 했다. 그는 팔목시계를 연방 들여다 보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에 또······ 내가 급한 볼일이 생겨서 나갔다 올 테니까 자습하도록, 어이 급장.” 맨 앞줄에 앉았던 석환이가 엉거주춤 일어나려니까, 메뚜기는 그애를 힐끗 바라보고는 곧장 교실 뒷전만 두리번댔다. “장판석이, 판석이 어딨나?” 아이들이 일제히 뒤를 돌아보앗고 누군가 웃음을 참는 소리도 들렸다. 판석이는 괜히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애 바로 앞에 앉은 임종하가 들릴까말까한 소리로 “얘는 나한테두 져요.” 중얼거리자 아이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메뚜기가 그 소리를 놓쳤을 리 없었다. “에 또, 학기두 바뀌구 했으니까······ 오늘은 자습 후에 반장 선출을 해보는 것두 학습이 될 거다. 상급생이 됐으니까 그만한 자치 능력도 생겼을 줄 믿는다. 그런데 석환이 말고 누가 의장 노릇을 했으면 좋을까······ 누가 좋겠니?” 메뚜기가 묻자 앞에 꼬마들이 요란하게 떠들어댔다. “이영래요. 걔가 잘해요.” 메뚜기가 영래를 불러내어 “반장과 함께 조용히 자습을 시킨 뒤에, 자치 회의를 해라.” 이르고 훌짝 나가 버렸다. 선생님이 나간 뒤에, 머쓱하게 서 있던 영래가 교탁 앞에 비스듬히 걸터 앉았고 애들은 다음 행위에 잔뜩 기대를 가지면서 그애를 올려다 보았다. 영래가 말했다. “전부들 책을 집어넣어. 오늘 오전에는 씨름 대회를 연다.” 애들이 손뼉을 치며 와글와글 책보를 쌌고 영래는 교탁에 발을 올려놓고 의자를 흔들며 말타는 시늉을 했다. “헌병 대장 사령부, 짜가닥짜가닥 팡팡, 이 새끼들 조용히 해.” 영래가 은수에게 몽둥이를 주워 오라고 명령하니 그놈은 잽싸게 뛰어나가 각목 하나를 주워왔다. “종하 일루 나와.” 비실비실 웃으며 앞으로 나온 종하에게 영래가 말했다. “웃지 마 임마, 이걸 갖구 수틀리게 놀면 모두 조기는 거야. 알았지?” 종하는 가마니를 깔지 않은 흙바닥 통로를 각목을 들고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다. “오늘부터 너는 기율 부장이다.” “뭐야 그게······ 반장하군 다른가?” “임마 중학교 교문 앞에두 못 가봤어? 완장차구 서서 잘못한 애들 벌주는 거 말야.” 은수가 항의했다. “그럼 나는 뭐야, 넌 뭐구······.” “이새끼, 나는 의장이잖아. 종하는 기율부장, 너는 말이지 총무다.” “반장보다 높은 거냐?” 아이들이 킥킥.

종하는 내 앞을 지나며 공연히 똑바로 앉으라면서 허리께를 각목으로 꾹 찔렀다. 나는 등에 힘을 주고 빳빳이 긴장해서 앉아있었다. 그때 석환이가 안으로 폭싹 기어들어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말야······ 씨름대회는 반대한다.” 아이들이 왁자지껄하며 석환이 쪽에다 불평을 제각기 터뜨렸다. “혼자 잘난 체하지 마라 짜식.” “누가 네 명령이나 듣겠다누.” “영래야 때려줘라.” 영래가 교탁을 쾅 때리며 말했다. “새끼들 조용하라니까.” 임종하가 각목을 땅에다 쿵쿵 찧으며 주위를 둘러보았고 아이들이 잠잠해졌다. 석환이는 가까스로 말할 기운이 났는지 아까보다 더욱 또렷하게, “선생님이 자습을 한 다음에 자치회를 하라구 그랬어. 또 혼자서 마음대로 학급 간부를 지명해서도 안 된다구 생각해.” 바보같은 놈들이 설쳐대는 꼴을 보니 나도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영래만한 통솔력도 없는 터에 모두들 나더러 공부 좀 한다구 으스댄다고 할 거였다. 그 전 학교에서처럼 발언권을 얻어 동의와 제청을 받고 의견이 받아들여지고 하는 재미있던 판국과는 전혀 딴판이어서, 까짓거 입다물고 구경이나 하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몇몇 줄반장 애들은 불만이 있어 보였으나 교실 뒤에 버티고 선 종하 쪽을 연방 돌아보기만 하는 거였다. 영래가 씨익 웃었다. “응 좋아, 애들한테 물어보자. 얘들아 씨름대회를 뒤로 미루고 자습할까?” 반 아이들이 웅성대며 항의하거나, 재삼 석환이를 욕하기 시작했다. “대신에 자치회를 먼저 하자. 너희들 석환이가 반장 노릇하는 걸 찬성하는 사람 손들어.” 한 사람의 손도 올라가지 않았고 뒤늦게 들었던 애들도 대부분 아이들의 드높은 불만의 분위기에 위축되어 슬금슬금 내려버렸다. “다음은 내가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 절반 이상이 손을 들었고 두 번 다 손을 안 든 애들도 많았다. “봤지? 자치회는 이걸루 끝났다.” “그래, 이영래가 오늘부터 우리 반 급장이다.” “반대하는 놈들은 우리 반이 아니야.” 영래는 만족에 가득차서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들 밖으로 집합. 야 종하야, 집합시켜서 오목내 다리 밑으루 내려가.” 나는 환성을 울리며 밀려나가는 애들의 뒤를 따라나갔고, 우리 뒤에서 종하가 “빨리빨리 움직여.” 어쩌구 하며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석환이와 몇몇 아이들이 꾸물거리는 걸 보고 영래가 뒷짐을 지고 서서 종하에게 말했다. “야 단체행동에서 빠지는 애는 잡아다 조겨.” 은수도 말했다. “그래 영래 말이 옳다. 개인적으루 놀면 혼을 내야 해. 우리 반 애들이라면 다 함께 해야 한다.”

바깥일에 분주한 메뚜기가 돌아왔을 때, 아이들은 영래의 지시에 의하여 자발적인 대청소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메뚜기는 학급에 기강이 서고 자치 능력이 향상된 데 대하여 만족했고, 아이들이 영래를 급장으로 선출한 것에도 별로 이의가 없어 보였다.

우리 부모는 내 상급학교의 진학문제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동네에서 어느 대학생이 개인교사를 한다며 애들을 모으고 있는 중이었으므로 나를 그리로 보냈었다. 거기서 치른 학력 테스트의 결과를 알고 어머니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대학생의 말에 의하면 이런 실력으로는 중간급인 사립 중학교에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거였다. 그때부터 밤늦게까지 입시공부에 시달리지 않으면 안되었고, 자습시간이 많았던 학급실정이 오히려 내게는 다행이었다. 따라서 나는 전입생으로서 서먹서먹하던 그 전보다 더욱 학급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영래가 반장이 되고 나서 나는 학교에 가는 일이 시큰둥해진 느낌이었다. 무관심했던 내게도 불편한 사태가 자주 벌어지게 되었는데, 영래가 너무 자기 마음대로만 하려고 그랬기 때문이었다. 은행지점장의 아들이나 공장장 아들, 극장, 양조장집 아들같은 너댓 명의 부잣집 애들은 특히 괴로움을 많이 받았었다. 그애들은 뭔가 좋은 것들, 이를테면 장난감, 극장표, 돈 같은 것들을 갖다 바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내일까지 가져와.” 한마디면 통하는 모양이었다. 대부분의 다른 애들은 평소부터 그애들에게 반감을 많이 갖고 있어서 영래나 종하나 은수의 명령이 이행되지 않았을 때에 그애들이 교실 뒤에서 엎드려 뻗쳐를 하고 궁둥이를 맞는 걸 통쾌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부잣집 애들도 나중에는 그리 불만스러워하는 것 같지 않았는데, 청소당번을 제외받았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애들은 자기가 싫어하는 애들을 혼내주도록 저 세 아이들 중 아무나에게 선물을 하면 되었던 거다.

있으나마나한 부반장으로 영락한 석환이도, 나도, 하여간에 좀 영리한 애들은 끼리끼리 소곤소곤 어린이 잡지나 돌려보면서 그애들의 노는 꼴에 전혀 상관하지 않으려 애썼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느 정도 기가 죽었으나 그래도 아직은 영래를 신뢰했는데 그는 아이들을 재미있게 하고 동시에 무서운 존경을 일으키게 하는 데 재주가 비상했던 것이다. 영래의 제의로 우리는 두어 차례의 모금을 했었다. 한번은 담임선생 메뚜기네 아기의 돌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서였고, 다음엔 청소도구를 마련한다는 구실이었다. 판단이 부족했던 우리가 어렴풋이 느끼기에도 금액이 좀 과했던 것 같았다. 제삼 분단장인 동열이의 머리가 터졌던 건 바로 그 일 때문이었다. 그애가 쑤군거린 얘기를 들어보면 거둔 돈의 절반을 그애들이 쓱싹해서는 학교 앞 찐빵가게에 맡겨놓고 까먹고 있다고 했다. 얘기를 들은 다섯 아이들 중 누군가의 󰠏󰠏󰠏 아마도 영래와 방향이 같은 기지촌에 사는 아이가 그랬을 󰠏󰠏󰠏 고자질에 의해서 폭행이 벌어졌다. 예의 메뚜기가 자리를 비운 자습시간에 영래가 무조건 동열이를 불러내어 “임마, 너 나한테 잘못한 거 없어?” 하고 따지면서 다짜고짜 발길로 걷어찬 다음 막대기로 그애 머리를 깠다. 아이들은 숨을 죽이고 침을 삼키며 그애가 머리를 움켜쥐고 죽는 소리로 우는 걸 바라보기만 했다. 종하가 옆에서 얼러댔다. “짜식들 누가 돈을 떼먹었냐, 얘 맞은 거 담임한테 찌르면 알지?” 영래는 역시 화를 발칵 내고 “쓸데없는 소리하지마 새꺄.” 종하를 윽박지른 다음에 우리에게 씩 웃어 보였다. “돈이 남은 건 맞다. 그걸 말이지 나는 다음에 쓸라구 남겨뒀던 거야. 축구부를 만들기루 했지. 다른 반과 시합을 갖구 다음번엔 저쪽 오목내 학교 패들하구두 붙는다.” 아이들이 와글와글 손뼉치는 소리. “그러구 얘가 맞은 건······.” 영래가 공포에 질려 꿇어앉은 동열이를 거만하게 내려다보며 잠깐 사이를 두었다. “우리 반을 배반했기 때문야.” 은수가 맞장구를 쳤다. “그래 영래 말이 옳다. 짜식이 배반자야.” 서부영화에 많이 나오는 씩씩하고 멋진 얘기 같았으므로 교실의 이곳저곳에서 낱말 외우기나 하는 듯 아이들의 “배반자, 배반자” 하는 중얼거림이 퍼져나갔다. 그들은 으쓱해진 느낌이었고 앞에 적발되어 꿇어앉은 이 새로운 적(敵)을 새삼스럽게 관찰했다. 영래가 아이들을 휘둘러보고 나서, “누구든지 고자질을 하거나 쑤군대두 좋다. 치만, 우리 반 애들 중엔 내게 그런 걸 알려주는 좋은 친구들이 많으니까······ 이런 간신 같은 짓을 못할 거야.”

토요일 방과 후에 우리는 남아서 오목내 패들과의 축구시합을 구경해야만 되었다. 물론 연습시간이 잦았던 우리 선수가 이겼다. 아이들은 그날 유쾌한 오락시간과 선수들이 보여준 무용(武勇)에 의해서 열이 올라 노래를 부르며 돌아갔다. 나는 제분회사의 뒷문으로 해서 철길을 따라 군대 피복창을 가로질러 공장의 벽돌담 아래로 나서는 지름길을 다녔는데, 그날은 피복창 입구에 가시철망이 쳐져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우리 학교 본관건물이 있는 시가지쪽으로 빙 돌아서 가야만 했다. 행길을 건너려고 차가 뜸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 학교 교무실이 어느 쪽에 있느냐고 누가 말을 걸어왔다. 여학생 교복을 입은 아주 예쁜 누나였다. 학교 교무실은 부대가 들어선 본관건물 옆의 빈 터에 지어진 기다란 반달형 퀸셋에 있었으므로 거기를 손가락질해 보여주었다. “어린이 고맙습니다.” 하며 그이가 공손히 절을 했으며 나는 웃을 때 보여준 그의 희고 고운 치아와 깊숙해 뵈는 속 쌍꺼풀 때문에 가슴이 뻐근하게 아플 지경이었다.

다음날, 학교에 가니까 아이들이 술렁대고 있었다. 여자선생이 오게 되었다며 방금 메뚜기랑 같이 제과점에 얘기하러 갔다는 것이다. 나는 공연히 어제 본 그 누나가 아닐까 하는 기대로써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온다, 와.” 언제나 파수를 보는 아이가 호들갑을 떨며 창고 교실로 뛰어들어왔다. 메뚜기가 훨씬 앞서서 들어오고, 한참이나 지루하게 기다린 느낌 뒤에 여선생이 들어왔으며 그이는 약간 수줍어하듯 보였다. 입구에 어깨를 동그랗게 움츠리고 섰는 분은 역시 어제의 그 누나였다. 나는 나를 알리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매일같이 아무 생각없이 들었던 영래의 “차렷” 구령소리가 그날따라 나를 수치에 떨게 만들 줄은 몰랐다. 나는 “경례”에 따라 머리를 숙이면서 처음으로 굴욕감을 느껴야 했다. 메뚜기가 그이에게 좀더 앞으로 나오시라는 손짓을 해 보였다. “에 또, 이번에 사범학교 졸업반에 계시는 여러 선생님들이 교생실습을 나오셨다. 내가 교장선생님께 간청해서 상급학년에서는 우리 반만이 그 모범학급으로 뽑혀 모셔오게 된 것이다.” 메뚜기는 이어서 교생 선생님의 성함과, 일주일의 반쯤을 그분이 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마 메뚜기가 게으른 자기의 수업 공백을 메워보려는 게 틀림없었다. 누군가 “교생이 뭐야. 선생하군 다른가······” 하자마자 그이는 청아하고 똑똑한 발음으로 “네 다릅니다. 여러분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처럼 나도 선생님되는 공부를 하러 온 것입니다. 닭이 알을 품으면 뭐가 되지요?” 엉뚱한 질문에 아이들이 불규칙하게 “병아리요.” “병아리는 커서 뭐가 되나요?” 아이들은 이번에는 일제히 “닭이요.” “옳습니다. 저는 말하자면 병아리 선생님인 셈이죠. 호호호.” 아이들이 와 하고 웃었으며 메뚜기도 껄껄 웃었다.

나는 병아리 선생님이 나오시는 학교에 가는 일이 한편으로는 즐거웠으나, 학급 분위기가 나를 전보다 더욱더 부끄럽게 만들었던 게 사실이었다. 그리고 특히 토요일 방과 후는 지겨웠다. 영래가 아이들을 오목내 다리 밑의 모래펄로 집합시켜서는 축구시합을 응원하도록 하는 거였다. 반을 위한 단체행동이었으므로 혼자 빠져나가게 되면 혼이 날 게 두려웠다. 아마 일주일 동안의 벌청소 당번을 지명받기가 십상이었을 게다. 아이들의 불평 불만이 은연중에 조금씩 무르익어가게 되었던 것은 자칭 기율부장이라는 임종하와 총무 박은수의 횡포 때문이었다. 은수가 선수 유니폼과 병아리 선생님에 대한 ‘성의의 표시’를 구입한다며 학급비를 거두었고, 종하는 아이들을 매로써 징계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또한 영래와 귀가 방향이 같은 기지촌 애들 몇명까지 덩달아 으쓱거리게 되었다. 그들 중 하나라도 반애와 싸움을 하게 되면 권투시합 십회전을 시켜놓고 죽 둘러서서 구경하다가 불리해질 경우 몰매를 놓는 거였다. 기지촌에 사는 가난한 그애들은 다른 애들의 점심 도시락을 빼앗아 먹는 일도 있었다. 그애들이 영래의 지시에 어긋나는 일을 저지른 애들을 꼬박꼬박 일어바쳤기 때문에 반 애들 모두가 우선 그애들 비위를 상하지 않게 하려고 조심했다. 나는 영래를 마음속에서도 찬양하는 아이들이 이젠 거의 없다는 걸 알았다. 새로 오신 교생선생님은 무엇이나 열성을 다해 가르치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어느 때는 우리가 모르는 어려운 얘기까지 꺼내어 학과의 분명치 않은 곳을 밝혀 주려고 했었다. 우리 실력을 향상시켜주느라고 벼락시험도 자주 치렀다. 나는 그 무렵에 밤 서너시까지 과외공부로 시달렸던 때였으므로 다른 애들과 현격한 차이로 거의 만점을 맞곤 해서 그이의 주의를 끌 수가 있었으나, 그이는 나를 영래나 그쪽 떨거지 놈들과 하나도 구별 없이 대할 뿐이었다. 나는 야속했다.

한번은 선생님이 청소감독을 끝내고 돌아가는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가만가만 뒤쫓아 가본 적도 있었다. 멀리서 앞서가는 선생님의 뒷모습은 아직 어른이 아니었다. 키가 작아 어른들 틈에 끼니까 우리와 동년배의 소녀처럼 보였다. 내가 일부러 다른 델 보면서 선생님을 질러갔다가 뒤돌아보고 인사를 했더니, 그이는 내 손을 잡으며 반가워했었다. “김수남, 왜 이제 집에 가지요?”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저······ 친구 집에 들렀다가 늦었어요.” “집에서 걱정하실 텐데요. 다음에 그런 일이 있으면 미리 말씀드려야 합니다.” 나는 선생님이 시내로 들어가는 전차를 타야 할 역전 네거리 앞 종점까지 함께 걸었다. 말없이 걷던 그이가 “김수남 어린이는 이번 시험에도 성적이 아주 뛰어나더군요” 말했으므로 나는 얼굴이 새빨개졌고 얼떨결에 “반장은 어때요, 선생님?” 하며 내 속마음을 드러내고 말았다. “이영래······ 어린이 말인가요?” 그이는 뭔가 곰곰 생각해보는 듯한 표정이다가 “어떻게 생각해요, 김수남 어린이는 혼자서 살 수 있나요?” 물어왔다. 나는 동생 없이 엄마 없이, 누구보다도 선생님이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고 혼자서는 못 산다고 대답했다. 그이가 말했다. “혼자서만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사람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면 여럿이서 고쳐줘야 해요. 그냥 모른 체하면 모두 다 함께 나쁜 사람들입니다. 더구나 공부를 잘 한다거나 집안 형편이 좋은 학생은 그렇지 못한 다른 친구들께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는 무슨 얘기인지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선생님께서 나를 책망하고 있다는 느낌이어서 풀이 죽어버렸던 것이다.

며칠 후에 선생님은 처음으로 우리에게 노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이는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책을 펴지도 않고 몹시 슬퍼 뵈는 얼굴로 말했던 거였다. “어른들이 제일 나쁜 점은 자기 잘못을 애써 감추려 하는 그것입니다. 천박한 속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겉으로만 번지르르하게 내세우는 건, 스스로 자신이 없기 때문이에요. 나는 여러분들이 이 혼란한 시기에 이런 창고에서 책상도 없이 공부할망정 마음씨와 배우려는 자세가 소박하고 고울 줄로만 여겨왔습니다. 여러분은 못된 어른들의 본을 받아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선생님은 선생님다워야 하며 어른은 어른다워야 하고, 어린이는 어린이다워야 합니다. 어제 방과 후에 학급대표들을 돌려보내고 나는 참으로 슬펐습니다. 물론 그것이 학급 전체의 뜻이 아니었기를 나는 믿으려 합니다.” 나중에 알게 된 건 선생님이 영래네 패들의 ‘성의 표시’ 때문에 화가 났다는 것이다. 저 깡패 같은 더러운 자식들이 내 선생님께 허벅지까지 올라가는 외제 나일론 스타킹을 드렸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불같이 성이 치밀어올라 잠들기 전에는 그 녀석들에게 수십 번씩 욕을 되풀이 퍼붓고야 마음이 가라앉곤 했다.

한번은 기지촌 아이들 중의 하나가 양조장 집 아들의 도시락을 빼앗아 먹고 있는 것을 선생님이 우연히 알아채게 되었다. “어린이는 왜 점심을 안 싸오지, 배고프지 않아요?” 울먹울먹하며 그애는 연방 빼앗아간 쪽을 바라보았고, 그놈은 입가에 손가락을 대며 주먹을 쥐어 흔들어 보였다. “자 이리 와 나하구 같이 먹어요.” 빼앗긴 아이가 수줍어하며 가까스로 말했다. “선생님······ 싫어요. 진짜는 저, 도시락을 가져왔어요.” “그런데 왜 안 먹을까, 몸이 아픈가요?” “아니에요······.” 선생님이 웃음을 방긋 머금고 말했다. “아 착한 어린이군요. 누구를 위해 주었군요, 그렇죠?” 그애가 더욱 울상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이 재빨리 말했다. “네 좋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이렇게 서로 돕는 정다운 행동에 마음이 한없이 기뻐요.” 남의 도시락을 앞에 놓고 있던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아마 나보다도 여러분이 학급 친구의 사정을 훨씬 더 잘 알고 있겠지요. 도시락을 못 가져오는 어린이가 몇 사람 더 있을 줄로 압니다. 내일부터 누구든지 그런 친구의 도시락을 함께 싸올 어린이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너무 무리를 하지 말고, 어머님께 여쭤봐서 허락을 얻으면 말이에요.” 나는 영래랑 어울려서 으쓱대던 그애들이 미웠지만, 내 아름다운 선생님의 말씀을 언제라도 거역할 수가 없었으므로 어머니에게 여쭈어보았다.

어머니가 처음엔 걱정을 했다. “글쎄 너두 딱하구나. 난리통이라 살기 힘든 세월인데, 하루이틀도 아니고 매일 어떻게 둘씩이나 싸달란 말이냐.” 내가 그럼 저녁마다 조금씩 먹으면 되잖느냐 졸라댔고, 나중에 아버지가 돌아와 얘길 듣고는 유쾌하게 응낙했다. “좋은 일이다. 선생님이나 급우들을 실망시켜선 안 되지. 중요한 건 네가 도움을 받는 친구보다 훌륭하다는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또 있어. 조금치도 그 친구께 전과 달리 대하지 말고, 당연한 것으로 받도록 노력해라.” 나는 일찌감치 학교에 가서 그애의 자리에다 도시락을 갖다 두었고, 노트를 찢어 “벤또는 나중에 돌려줘. 김수남.”이라고 써두었다. 그런 다음부터 도시락을 빼앗기거나 누가 점심을 굶는 일이 없어졌다. 나는 그쪽에서 쑥스럽게 내미는 도시락을 아무 말없이 슬쩍 받아넣어 갖고 돌아오곤 했었다. 석환이도 동일이도 서로 내색은 않고 있었지만, 선생님을 무척 좋아하고 있는 눈치였으며 점심을 둘씩 준비해 오는 게 뻔했다. 기지촌에 사는 세 아이들은 한결 양순해졌고 적의를 갖고 대하던 우리에게도 욕을 넣지 않고 말을 건네오곤 하였다. 아이들이란 참으로 단순한지라 전과 달리 서로를 알게 되어 집을 방문하기도 하며 친해질 수가 있었다. 그애들은 차츰 급우들을 미워하지 않게 되었다.

동열이를 배반자로 몰아세웠듯이 영래는 자치회 때에 눈에 난 아이들을 앞으로 불러내서는 벌을 가했다. 신발주머니를 까먹고 안 가져왔던 애들은 벌 청소를, 청소가 불량했던 분단은 몽땅 손들고 오리걸음으로 걷게 한다거나, 전반원이 참가하여 다른 반 애들과 붙었던 시계불알 땅뺏기에서 빠졌던 애들은 코 잡고 맴돌기 오십 번을 시키는 식이었다. 아이들은 이젠 그런 일에 전처럼 열광하지도 않았고 시들해 있었으며 전보다는 오히려 서로가 화목해진 편이었다. 모두들 축구라거나 땅뺏기에 이겨야 한다는 핑계로 마구 다루는 데 휩쓸리고프지 않았다. 애들이 앞에 나가서 코끼리 맴돌기를 하고 있을 때, 자치회를 위하여 자리를 피해주었던 선생님이 눈을 휘둥그래 뜨며 놀랐다. “뭘 하구 있는 거예요?” 아이들은 입을 꾹 다물었고 영래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벌을 주고 있습니다.” “무슨 벌을?” “얘들이 단체행동에서 빠지려구 합니다.” “단체행동이라니······.” “얘들 때문에 우리가 졌어요. 우리 반의 명예를 위해서 전부 놀이에 참가할 작정이었습니다.” “네, 그런가요. 언제 그 놀이를 해보자구 여럿이서 의논을 했었나요?” 선생님의 한결같이 부드러운 질문에 영래가 대들 듯이 거칠게 대답했다. “아뇨, 하나마나죠. 우리 반을 위해서 나는 모두 참가해야 된다구 생각했습니다.” “물론 여럿이 하는 일에 마음이 모두 맞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각자의 의견도 묻지 않고 혼자의 생각만 주장해서는 절대로 무슨 일에서건 이길 수 없을 거예요. 급장은 책임이 중할수록 누구에게 불만이 없는가를 살피고, 있다면 그 불만이 자기가 저지른 어떤 잘못 때문이 아닌가 스스로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마음을 모으겠다는 핑계로 제 잘못을 감추려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그러나 자치회 때의 일로 영래와 종하 은수 그애들은 선생님을 점점 미워하게 되었고, 자기네와 별로 나이 차이가 많지 않은 소녀라고 눌러보려 했던 것이다. 그애들은 병아리 선생님에 관한 음탕한 욕지거리를 지껄이거나 그이가 돌아서서 칠판에 글씨를 쓸 때 일어나 쑥떡을 먹이며 이상스런 몸짓을 하는 거였다. 나는 이 공공연한 모독에 의한 아이들의 수치심이 점차로 깊이 만연되어가고 있었던 상태를 전혀 느끼지도 못했었다. 어느 산수시간에 뒷자리 아이로부터 내게까지 작게 접은 종이조각이 건네져 왔으며, 펴보고 나서 나는 드디어 더이상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결심했다. 종이조각에는 “본 다음에 앞으로 돌릴 것. 임종하.”라고 씌어 있고 밑에다 그이에 관한 욕설에 곁들여 변소에서도 간혹 볼 수 있는 추잡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그림을 책갈피에 끼워넣고 시간이 끝나기를 애가 달아 기다렸다. 그동안 나는 별의별 무서운 공상에 시달렸다. 나는 얻어터진다. 머리가 깨어져 다 죽게 된다. 그이가 나를 업고 간다. 몇 날 몇 달을 끝없이 간다. 시간이 끝나고 선생님이 나가자마자 뒤에서 종하가 대견한 짓이라도 해냈다는 듯이 “얘들아 그 쪽지 어디까지 갔는지 이쪽으루 다시 돌려라” 하며 떠들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겁내지 않으려 애쓰면서 말했다. “내가 가졌다 왜. 정말 너 이 따위 장난만 하기냐?” 종하와 은수가 얼굴을 마주보더니 어이없다는 듯 낄낄 웃어댔다. “그게 니 깔치니?” “구경했으면 고맙다구 그럴 게지, 이 새끼가······.” 나도 지지 않고 말했다. “너희들 사과 안하면 그냥 안 둔다.” 그에게로 가서 종이조각을 내밀어 주었다. “사과해, 너는 선생님을 욕보인 나쁜 놈이다.” “그래 병아리 선생님은 좋은 분이야”하고 석환이가 잇달아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자 이걸 네 손으로 찢어버려.” “이 새끼가······ 맞아볼래?” 종하가 내 멱살을 잡아 앞뒤로 흔들다가 바닥에 쓰러뜨렸다. 은수와 영래가 “밟아버려, 밟아.” 외치는 소리도 들렸다. 아이들이 뒤로 한꺼번에 몰려들어 제각기 떠들었다. “너희들이 잘못이다,” “우리는 병아리 선생님을 좋아한다.” “그분은 훌륭한 사람이야.” 기가 죽어 지내던 장판석이도 종하를 내게서 떼어 밀치면서 말했다. “애들 때리면 재미 적다.” 은수와 종하는 아직도 영래의 행동을 기다리며 씨근거렸다. 아이들이 사방에서 한마디씩 했다. “학급비를 거둬다 우리한텐 알리지두 않고 맘대로 쓴 건 잘못이다.” “요전에 동열이를 때린 것두 잘못이라구 생각한다.” “한번도 자치회에서 물어보지도 않구 혼자 맘대로 한 건 더욱 잘못이다.” 영래는 자기가 반 아이들에게서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는 걸 알았는지 얼굴이 샛노랗게 질려있었다. “너희들 반장에게······ 이러기냐?” “너는 반장 자격이 없어.” “그만둬라.” 나는 종하에게 종이쪽지를 내밀었다. 종하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는 듯이 영래를 바라보자 그애는 의외로 나약해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찢어, 임마.” 종하가 그걸 찢었다. 나는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내게 사과 안 할테냐?” 아이들이 거칠어지고 있었다. “그래 사과하란 말야, 짜식들아.” “사과 안 하면 몰매를 놓아서 쫓아내라.” 종하가 아주 비굴하게 들릴까말까한 음성으로 말했다. “미안하다.” 우리는 모두가 그애들이 너무나도 초라하게 풀이 죽은 걸 보고서 어리둥절해질 지경이었다. 나의 들끓던 수치감은 그때에 꽉 몰려 있던 오줌이 방광을 비집고 쏟아져 나올 때처럼 외부로 터져나갔고, 가벼운 몸서리를 흠칫 느꼈던 것이었다.

나는 노깡 속의 어둠을 생생히 기억하구 있다. 선생님과 헤어지기 며칠 전에 어머니에게 졸라서 그분을 집으로 초대한 적이 있었지. 그날 나는 부끄러워하면서 내 악몽의 비밀을 말씀드렸더니, 선생님은 말했어. “애써보지도 않고 덮어놓고 무서워만 하면 비굴한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겁쟁이가 되어 끝내 무서움에서 놓여날 수가 없는 거예요.” 나는 그 뒤 몇 번이나 벼른 끝에 모험을 감행하게 되었고, 노깡 속에 다시 한번 들어갔더랬지. 나는 그 속의 뼈다귀가 개뼈, 소뼈, 사람 뼈다귀인지 몰랐지만 어쨌든 아무렇지 않게 길을 들였던 것이다. 나는 그이가 어린이들끼리의 일들을 미리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모르거나 모른 체했었는지 아직도 알 수 없구나. 다만 아이들이 존경하는 그이가 옆에 계시니까 욕스럽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스스로 깨달았던 것만은 분명하다.

여럿이 윤리적인 무관심으로 해서 정의가 밟히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거야. 걸인 한 사람이 이 겨울에 얼어 죽어도 그것은 우리의 탓이어야 한다. 너는 저 깊고 수많은 안방들 속의 사생활 뒤에 음울하게 숨어 있는 우리를 상상해보구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생활에서 오는 피로의 일반화 때문인지, 저녁의 이 도시엔 쓸쓸한 찬바람만이 지나간다. 그이가 봄과 함께 오셨으면 좋겠다.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어, 그이가 오는 걸 재빨리 알진 못하겠으나, 얼음이 녹아 시냇물이 노래하고 먼 산이 가까워 올 때에 우리가 느끼듯이 그이는 은연중에 올 것이다. 그분에 대한 자각이 왔을 때 아직 가망은 있는 게 아니겠니. 너의 몸 송두리째가 그이에의 자각이 되어라. 형은 이제부터 그이를 그리는 뉘우침이 되리라.

우리는 너를 항상 기억하고 있으며, 너는 우리에게서 소외되어버린 자가 절대로 아니니까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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